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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화자 [詩的 話者]

시에서 말하는 이는 어떻게 나타날까?

(시적 화자(자아), 서정적 자아(주인공))

 문학의 여러가지 목적 중에서 하나로 '소통'을 꼽을 수 있다고 하였다. 만약 글쓴이가 '시'라는 문학 장르를 통해서 소통을 시도한다면, 그 시 안에는 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주체'가 존재하게 된다. 일반적인 글에서는 글쓴이와 그 글에서 전달하는 사람이 일치한다. 가령, 어떤 글에서 글쓴이가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라는 진술을 하였다면, 그것이 인용구와 같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녀를 사랑한다.'는 행위의 주체는 글쓴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학의 경우에도 글쓴이와 글 안에서 전달하는 주체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통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시가문학의 경우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주체시적 화자(자아)라고 말한다. 시가문학이 '서정 장르'의 하나이기 때문에 서정적 자아(주인공)[각주:1]이라는 표현도 종종 사용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문학에서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글쓴이(시인)와 시적 화자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글쓴이와는 독립된 존재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적 화자가 글쓴이와 독립된 별개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많은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글쓴이의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글쓴이의 생각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시적 화자가 시가문학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알아보자.

 먼저, 시적 화자가 작품에 드러나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명시적 화자'와 '암시적 화자'로 나누어질 수 있다. 명시적(明示的) 화자작품 전면에 드러난 시적 화자를 말한다. 반면, 암시적(暗示的) 화자작품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시적 화자를 말한다. 이 둘 사이의 개념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로는 다음과 같다.

(가) 그녀 -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는 뛰게 한다. 나의 심장을

(나) 움직임, 떨림
 사랑받는 그녀
 그녀의 사소한 움직임은 심각한 떨림을 만들어낸다.

 (가)의 예에는 '나'라는 것이 단적으로 나타나서 시적 화자가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 있고, 시적 화자가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나)의 예에서는 '사랑받는 그녀'의 사소한 움직임이 가지는 의미만 묘사되었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주체가 작품에 드러나 있지 않아서, 시적 화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똑같이 '사랑하는 그녀'를 표현한 시임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가 작품에 드러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드러나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적 화자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 이런 생각을 해보자. 어떤 여자가 길을 가다가 어떤 남자에게 직접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받는 경우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글을 발견한 경우에 여자가 느끼는 감정은 어떻게 다를까? 남자에게 직접 고백을 받는 경우라면, 그 여자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남자가 전면에 있기에, 그 남자가 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지 생각해 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단순히 문구가 적힌 글을 보는 경우라면, '사랑합니다.'라는 글 자체의 의미를 생각해 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똑같이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그 전달하는 주체가 드러난 경우와 드러나지 않은 경우에 받아 들이는 이의 태도는 달라진다.

 시에서 시적 화자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경우, 읽는이는 시에 나타난 상황을 그 시적 화자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시적 화자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해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시적 화자가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 읽는이는 시에 나타난 상황 그 자체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시적 화자가 글쓴이와 같지 않은 경우에, 글쓴이의 분신을 이용해서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경우와 글쓴이를 3인칭화하여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시적 화자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경우보통 시적 화자를 사람이 아닌 자연물이나 사물을 이용해서 나타내는 경우이다. 시적 화자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사례로는 다음과 같다.

(다) 그녀를 사랑하는 나무
 그녀는 매일 이 길을 지나갑니다.
 나는 그 길 옆에서 매일 그녀를 바라봅니다.

 (다)의 예에서 시의 제목이 '그녀를 사랑하는 나무'라는 것을 통해서, 시적 화자는 '그녀가 매일 지나다니는 길의 옆에 서 있는 나무'라는 것을 추론해낼 수 있다. 이 시의 경우에 시적 화자는 사람이 아닌 자연물인 '나무'로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시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물이나 사물이 시적 화자가 될 수 있다.

 시적 화자로 자연물이나 사물을 내세운다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은 가지지 못했지만, 자연물이나 사물이 가진 속성을 이용해서 글쓴이와 읽는이 사이의 보다 원활한 소통을 도모할 수 있다. (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라는 자연물은 '운동성'이 없기 때문에, 사람에 비해서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이러한 자연물 '나무'의 속성을 통해서, 글쓴이는 읽는이에게 '한 장소에서 머무르면서 항상 그녀를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적 화자로 자연물이나 사물을 내세우면, 사람을 시적 화자로 내세울 때 표현하지 못했던 속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시적 화자를 객관화된 자아로 나타내는 경우는 글쓴이가 비유적인 대상이나 분신을 동원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을 3인칭화하여 나타내는  경우이다. 시적 화자를 객관화된 자아로 나타낸 사례는 다음과 같다.

(라) 그 사람 이야기
 그 사람은요. 그녀를 사랑한데요.
 그 사람은요. 그 사소한 움직임을 심각한 떨림으로 받아들인데요.

 (라)의 예에서 시적 화자는 '그 사람'으로 나타나있다. 문학은 글쓴이와 읽는이 사이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끌어온다면, 여기서 '그 사람'을 글쓴이를 단순히 3인칭화하여 나타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에서는 글쓴이 자신을 단순히 3인칭화하여 나타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신을 나타낼 때에는 1인칭을 쓰는데, 글쓴이는 시적 화자를 3인칭화하여 나타낼까? 가령, 어떤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한다고 하자.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말미암아, 그녀가 크게 당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직접 '자기 자신'에 관해서 묻는 방법보다, 자신이 가진 대표적인 속성을 갖춘 '어떤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쓴이도 읽는이가 시적 상황 자체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보다, 시적 화자를 3인칭화함으로써 다소 거리를 두고 시적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할 때, 시적 화자를 객관화된 자아로써 나타낸다.

 이로써, 시가 문학에서 글쓴이의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주체인 '시적 화자'의 개념과 그것이 글에서 나타나는 양상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아울러, 시적 화자가 나타나는 양상에 따라 어떤 표현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1. 국어사전에 의하면, '서정적 자아'를 북한에서는 '서정적 주인공'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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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Uno 2012. 5. 27. 23:23